퇴근을 하고 밤에 맥주를 한 캔 마시는 것은 오래된 나의 습관 중 하나이다. 별로 좋은 습관이 아닌데, 직장인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자주 혼자 맥주를 먹게 되는 빈도수가 참 많이 늘었다.
나에게 있어서 맥주는 낙이었다. 내가 회사차를 몰고 다닐때는 퇴근을 하고 나서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에 앉아서 유튜브를 한 시간 정도 보면서 맥주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당시 내가 느꼈을 감정은 바로 혼자 있고 싶음이었을 것이다.
자취를 하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나만의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한창 집이 어색했던 그 시절, 퇴근하고 차안에서 쪼그려 앉아서 먹던 그 캔맥주와 내가 보고 싶은 채널에서 나오는 유튜브 영상들. 그 소소한 즐거움을 항상 즐기고 싶어서 집에 늦게 들어가곤 했었다.
나는 비싼 소비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가끔 인스타를 보다보면 친구들이 압구정 쪽에 스시오마카세에 간다거나, 한우 오마카세집을 가서 인스타스토리에 올리는걸 참 많이 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 지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 어떤 치킨 브랜드에서는 무려 치킨 오마카세를 만들었다고 하더라. 물론 그 치킨 브랜드가 맛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킨 오마카세라니.. 요즘의 소비트렌드가 참 많이 비싸졌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에게 있어서 비싼소비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한 끼에 몇십만 원을 쓰지? 월급은 한정적인데 저렇게 살고서도 저축이 되나? 등등으로 한때는 그런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기도 했었다.
근데, 오늘 문득 여느때와 같이 똑같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오뚜기 새우 슈마이 만두에 켈리 한 캔을 마시면서 문득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 역시도 똑같이 충동적인 소비를 하고 있구나. 내가 다른 사람들의 돈 사용법에 대해서 뭐라고 할 자격이 과연 있을까? 하고 말이다.
위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직장인이 되고나서부터 꾸준히 편의점 안주에 캔맥주를 먹는것을 낙으로 삼던 사람이다. 나는 배달의민족으로 뭘 시켜 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술집에 가서 술을 진탕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근데 유난히 캔맥주와 편의점 안주를 참 좋아했다. 어느때는 만두에 맥주, 어느 때는 과자에 맥주, 어느 때는 그냥 캔맥주. 계속 별생각 없이, 그리고 습관처럼 술을 마셨다.
그렇게 내가 별 생각없이 소비했던 캔맥주의 값들, 그리고 별생각 없이 먹었던 편의점 안주들. 아마 이들이 모인다면, 그래도 나름대로 큰 소비가 될 것이다.
내가 오마카세라고 언급했던 하이엔드 식사 한끼, 내가 습관처럼 찾는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식사들, 그리고 퇴근 후에 편의점에 들어가서 집어드는 편의점 안주, 그리고 국산맥주와 필라이트. 이 둘 사이에는 차이점이 없다. 그냥 사람마다 어떤 소비가 가치가 있는 것이며, 돈을 사용하는 가치관이 다름에 따라 생기는 문제라고 본다.
오마카세 한끼를 먹고 인스타나 블로그에 뭔가를 올려서 만족하고, 그 시간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비싼 한 끼의 식사가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1주일동안 출근하며 거의 주 4일을 사가는 과자와 캔맥주의 값을 합친 소비가 모인다면 생각보다 오마카세와 돈이 비슷할 수도 있지않을까. 물론 그 정도까지 미친 듯이 마시는 건 아니나, 가랑비처럼 스며드는 소비를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내가 과연 오마카세 한 끼 먹는 사람에게 과소비하고 허세 부린다는 비난을 할 수 있을까? 난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비라는 것은 어찌보면 관점에 따라서 다른 것 같다. 내가 작은 안주와 캔맥주로 행복을 얻는 것과 누군가가 비싼 음식과 좋은 분위기에서 밥 먹는 걸로 행복을 얻는다면, 각자가 얻는 행복의 수단은 달라도 결국 둘 다 행복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오늘 먹은 이 오뚜기 새우슈마이와 켈리 한 캔은 오마카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와 다름에 대해서 무작정 비난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가치관과 생각들을 존중해 줘야겠다는 깨달음을 캔맥주를 먹다가 깨달아서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본다.
나만의 오마카세지만 그래도 술은 좀 줄여야지, 건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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