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정신없고 고민이 많은 시절이 있었다. 딱 작년 이 맘때쯤에 나는 많이 지쳐있었던 상태였다. 일을 하고는 있는데 뭔가 자릴 못 잡은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뭘 특별하게 좋아하지도 않고. 매사에 흥미가 없다 보니 뭘 해야 즐거울지도 모르고, 그냥 내가 별생각 없고 개념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그렇게 공허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정처 없이 걷는 것이 나의 취미가 되었다. 적어도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낼 수 있기도 하고, 시간도 별로 안 뺏기는 나름대로의 훌륭한 취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서울에서 살면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관광객의 관점에서 보는 서울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라고 난 생각한다. 그렇게 내가 주로 산책을 하게 되는 코스가 생겼으니 바로 후암동 쪽 작은 길로 올라가서 나있는 남산 둘레길 코스였다.
공영주차장 쪽으로 올라가면 차들이 있다. 이쪽으로 올라오면 우뚝 서있는 서울특별시교육청고학전시관 남산분관이 있다. 나는 항상 남산 둘레길로 걸어야지 생각을 하면 이곳을 시작점으로 생각하고 찾아갔었다. 근처에는 한양도성전시관도 있고 남산도서관도 있고 해서 여러 가지로 볼 건 많다고 한다만..
나는 항상 갈때마다 오후에서 저녁쯤에 갔었기 때문에, 이곳에 사람이 있는 건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차들만 주차되어 있고 조용한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어 있던 것만 보았다.
한양도성 전시관을 끼고 터덜터덜 올라가면 바로 남산 둘레길의 시작이다. 둘레길 코스는 가파르진 않고, 종종 사람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게 보이니깐 길만 쭉 따라가면 된다. 밤에 가더라도 가로등은 켜져있다 보니 위험하진 않은 듯하다.
다만 그래도 엄연한 산책로이기 때문에, 슬리퍼나 헐거운 신발은 신으면 안 될 거다. 내가 처음에 그냥 별생각 없이 남산 둘레길이라고 쳐보고 여름에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가다가 슬리퍼가 미끄러져서 다리를 삐었던 경험이 있으니깐 말이다. 안전은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니깐.
남산 둘레길을 따라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나는 왜 남들보다 잘 살고 있지 못할까, 나는 왜 어렸을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고생을 할까.. 등등 대부분이 그냥 내가 현재 잘 나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괴로움을 자아성찰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예전이라면 그냥 남 탓을 하고 세상 탓을 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는 않는다. 그냥 나는 현재가 중요하고 앞으로 잘 살아야지라고 계속 자기 최면을 하고 있는 중이니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남산 둘레길의 계단을 하나둘씩 오르다 보면 점점 잡생각이 사라지게 되는 것 같다.
둘레길 계단에는 중간중간 쉼터가 있다. 어르신들도 많이 운동을 하러 오는 곳이다 보니 최대한 편의성을 생각하여 지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나 역시도 올라가다가 지쳐서 잠깐 걸터앉아서 쉬기도 하고, 쉬다가 다시 괜찮아지면 다시 남산 타워를 향해서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오랜 시간 동안 남산타워를 향해 남산 둘레길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저 멀리서 남산타워가 보이게 되고 슬슬 남산 둘레길은 마무리가 되어간다. 나는 비가 미스트처럼 내리는 어느 날에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었는데, 그래도 남산타워가 나름 산이고 높은 곳에 있다고.. 주변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안개가 생겨서 앞이 잘 안보였었다.
그 와중에도 남산타워는 그 안개를 뚫고 높이 솟아올라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혼자 왔는데 뭐 하러 가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만 뱅뱅 돌았던 기억이 난다.
남산 둘레길을 뒤로하고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 나는 어렸을 때, 광화문과 서울역에서 일하는 커리어맨이 되어야지 하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하면서 서울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혼자 생각에 잠겨본다.
남산 타워 앞에서 보는 서울의 모습은 반짝반짝하고 정신없다. 모든 사람들은 뭘 위해서 열심히 살고 바쁘게 지낼까.. 하는 고민들도 해보고, 남산 둘레길 계단 오를 땐 힘들어서 아무 생각 안 들다가 다시 생각하게 된 잡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서울의 경치가 이렇게 멋지구나, 빌딩들이 어우러지는 모습들이 나름대로의 장관이긴 하구나 하는 생각 하면서 힘들게 오른 둘레길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 나름대로 도심 속 힐링을 해본다.
나에게 있어서 남산둘레길과 남산타워 앞마당은 잡생각을 지워주는 장소이자, 경치를 느낄 수 있는 힐링의 장소, 그 동시에 나름대로 서울 속 여행을 하게 해 준다는 느낌이 드는 관광지로써의 역할까지 해주는 곳이다.
앞으로도 내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복잡할 때가 되면 나는 원룸 밖을 벗어나서 남산 둘레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생각을 정리해 볼 것이다. 물론 그 생각들은 긍정적인 생각들로 바뀔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살 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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