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 좋네요, 무슨 향수 쓰세요?'
얼마 전에 지나가다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 향수를 자주 뿌리지는 않는데, 아마 그날은 내가 옷에 고기 냄새가 심해서 전날 집에 굴러다니던 향수를 옷에 뿌려놓았던 날이었을 것이다.
평상시에도 이 향수를 가끔 쓰기는 하지만 그때는 향이 좋다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가, 고기 냄새 빼려고 무심코 뿌려뒀던 옷에서 밴 냄새는 신기하게도 칭찬을 받았다.
내가 사지 않아서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그 향수에 대한 정보를 나는 그냥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니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향수라는 것이 주는 이미지가 있기는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나는 향수를 좋아하지만 향수를 사지 않았다. 이유는 크게 모르겠으나, 그냥 나라는 사람을 정의할만한 향기를 별로 찾지 못했기때문에 따로 구입을 하지는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하게 기억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진한 향수를 뿌려가면서 내가 여기 있음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싶어 했다.
향수가 고유의 향이 있어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나 역시도 내가 남들보다 낫고 남들보다 괜찮고 멋있다는 향수를 남들에게 만들어 보이고 싶었던 것이었다.
향수는 시간이 지나면 향이 여러 가지로 변한다. 얼마 전 밀폐된 사무실을 청소하다가 먼지냄새가 나서 지금은 쓰지 않는 오래된 향수를 뿌렸다.
안 그래도 창문이 없는 좁은 사무실은 화학적으로 변해버린 향이 가득한 향수냄새가 진동을 하는 방이 되어버렸다.
그 향수 냄새를 빼기 위해서 날도 추운데 밤새 복도까지 문을 열어 놓느라 크게 고생을 했었다.
분명, 이 향기는 내가 2년 전만 하더라도 참으로 좋아하는 향기였는데, 오랜만에 향수를 뿌려보니 그때의 향기는 남지 않고 화학적이고 매운 냄새만 남아 나를 괴롭힐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겨우 잠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창문 없는 방에 누워 매캐한 향수냄새를 맡으며 나는 문득 향수에 젖어들었다.
내가 조금 더 생각 없이 지냈던 어린 시절에는 외출을 하기 전 이 향기를 맡고 싶어 자기 전 날 입을 옷에 매일 뿌렸는데, 그랬던 맑았던 나의 향수 속의 향수가 이제는 탈취제로도 쓰고 싶지 않을 만큼 바뀌는구나, 내가 좋아했던 그 향수는 단순한 노스탤지어로써 남아있구나.
우리가 뿌리는 향수와 우리가 가끔 빠져드는 향수, 노스탤지어라고 불리우는 향수와는 공통된 점이 참 많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떤 향수를 참 좋아하여 매일매일 뿌리다가 그 향수를 잊고 지내다 문득 다시 맡아보면 그때의 향기가 다시 나타나서 다시 그때를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기분 좋은 향수가 있는가 하면, 내가 생각했던 향과 많이 달라 실망을 하는 향도 나타난다.
향수, 노스텔지어 역시도 같다. 내가 정말로 즐겁고 편안했던 추억이라 생각했던 그때의 내 모습과 기억들, 추억들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봐도 참 반가울 때가 있는가 하면, 내가 왜 그땐 이 것을 그리워했던 걸까? 하면서 추억과 다른 향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어떻게 그 시절 향수를 기억하고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더 깊은 향이 날 수도 있고, 은은한 향이 다 빠져버린 모기향 같은 향수만이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시절에 가지고 있던 두 개의 향수가 나에게 향을 통해 보여줬던 최근의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모처럼 과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사람은 과거의 추억을 먹고살며, 과거의 향기를 가끔씩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 과거의 추억과 그때의 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때의 향이 지금보다 향기로웠기 때문에, 어쩌면 모기향처럼 변해버렸을 수도 있는 현재 내 앞에 놓여있는 향수를 계속 바라보며 예전의 향을 내길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그 향기를 맡지 못할까 봐 불안하니까, 그냥 지금이 만족스럽지 않고 내 현실에 비해 노스탤지어가 더 향기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곳으로 도피하고 안정감을 얻고 싶은 것이다.
향수 속에 뿌려져 있는 그 향수의 향을 쫒고 싶어 계속 변해버린 향수를 뿌려봤자 남는 건 결국 두통일 뿐이다.
아마 무심코 고기냄새를 빼기 위해 뿌려둔 다른 향수의 향을 맡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경험을 내가 경험했다면, 그것은 조금 더 먼 미래에 내가 그리워하게 될 또 다른 향수이지 노스탤지어가 되진 않을까?
얼마 전에 문득 싱어게인 영상을 봤다. 3호 가수가 불렀던 하늘 끝에서 흘린 눈물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문득 눈물이 찔끔 났다. 아마 여러 가지 감정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자신의 꿈을 위하여 다시 무대에선 중견가수의 용기에 대한 감동일 수도 있고, 가사 속 이야기대로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아련함과 그리움에 대한 이입, 또는 중고등학생 때 잘 보이고 싶었던 친구들 앞에서 불렀던 노래에 대한 추억일 수도 있겠다.
주니퍼 - 하늘 끝에서 흘린 눈물
생각해 보면 이런 모든 감정들을 아우르는 것 역시도 향수이자 노스탤지어 일 것이다.
오랜만에 들었던 이 노래가 나의 마음을 다시 울리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는 것은 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을 그리워하다 다시 맡아보니 그때 기억했던 그 향기임을 알고 반가워하는 것이니 말이다.
혹시라도 과거의 기억만을 먹고살며, 현재를 비관하고 있다면 당신이 지금 뿌리고 있는 향수를 다시 한번 돌아보길 바란다.
아마 무심코 뿌렸던 그 향수의 잔향이 당신에게 새로운 행복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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